# 창세기 1:1 해석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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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은 성경 전체의 토대가 되는 선언입니다. 아무것도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계셨고, 자신의 능력과 뜻으로 모든 창조 세계를 존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우주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주권적인 창조주의 목적 있는 행위임을 밝힙니다. 이 한 문장은 인간의 존엄에서 구속에 이르기까지 성경에서 뒤따르는 모든 진리를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이시라는 사실 위에 세웁니다.

## 구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 — 창세기 1:1 (KRV)

## 문맥 한눈에 보기

- **책:** 창세기 — 성경과 토라의 첫 번째 책으로, 이름(*제네시스*)은 ‘기원’ 또는 ‘시작’을 뜻함
- **저자:** 전통적으로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 정체성의 신학적 토대를 이루도록 쓰임
- **대상:** 이스라엘 백성, 나아가 모든 인류. 우리가 어디서 왔고 왜 존재하는지 묻는 모든 사람
- **배경:** 성경의 맨 첫머리로, 인류 역사의 어떤 사건보다도 앞선 시점이며 궁극적 기원에 대한 선언
- **주제:** 창조, 하나님의 주권,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본성, 그리고 창조 세계가 본래 지닌 선함과 질서

## 한 문장의 무게

성경의 어떤 구절도 창세기 1:1보다 더 근본적인 무게를 지니지는 않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단 일곱 단어 안에 성경 전체의 세계관이 세워집니다. 시내산의 율법보다 앞서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보다 앞서며, 왕들과 선지자들의 이야기보다 앞서 이 말씀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히브리어 *베레시트*)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시간 자체의 바깥에, 그리고 시간보다 앞서 계신 분으로 두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안에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존재하게 하신 분입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때때로 *creatio ex nihilo*, 곧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있던 재료로 세계를 빚으신 것이 아니라 말씀과 뜻으로 세계를 불러내셨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의 칠 일간의 기록으로 읽든 창조의 본질을 설명하는 문학적 틀로 읽든, 핵심 주장은 변함없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인이 없는 원인이시며 모든 실재의 주권적 근거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으로 옮겨진 단어는 히브리어 *엘로힘*으로, 충만함이나 위엄을 나타내는 복수형으로 흔히 이해되며, 훗날 기독교 신학이 발전시킨 것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창조하시니라’로 옮겨진 동사 *바라*는 구약 전체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쓰이며, 이러한 절대적인 시작이 하나님께만 속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 ‘천지’의 의미

‘천지’(하늘과 땅)는 *메리즘*이라고 알려진 히브리어 관용 표현으로, 서로 반대되는 두 끝을 들어 전체를 나타내는 방식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말하면 모든 것을 뜻하듯, ‘천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의 모든 차원을 포함하는 창조 세계 전체를 뜻합니다. 존재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범위 밖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목회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여러분의 삶에서 그분의 앎과 돌보심 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불안과 인간관계, 풀리지 않는 질문까지 모두가 그것을 속속들이 아시는 창조주가 계신 우주 안에 있습니다. 창조 세계는 눈먼 법칙으로 돌아가는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그것을 매우 좋다고 선언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작품입니다(창세기 1:31).

또한 이는 물질, 곧 물리적 세계가 악하거나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고대와 현대의 일부 철학은 물질 세계를 함정이나 환상으로 여겨 왔습니다. 창세기 1:1은 이에 단호히 맞섭니다. 물리적 우주는 *창조된* 것이며 선하고 중요하고,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그 안에 들어오셨습니다(요한복음 1:1–3, 14).

## 첫 구절의 빛 아래서 살아가기

그리스도인에게 창세기 1:1은 단지 역사적이거나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 신뢰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의 존재 전부가 세계를 만드시고 그것을 선하다 하신 너그러우신 창조주에게서 왔습니다.

삶이 혼란스럽거나 목적 없이 느껴질 때 이 구절로 돌아가는 것은 영적인 행위입니다. 어둠 속에 빛을 말씀하신 하나님, 별들을 제 궤도에 두시고 흙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바로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주에는 저자가 계시며, 그 저자는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1:1은 이야기를 여는 말씀이며, 나머지 성경은 그분이 거기서 깨어진 것을 회복하시기 위해 얼마나 멀리 가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 관련 상호 참조

- **요한복음 1:1–3:** 요한은 의도적으로 창세기 1:1을 되울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선언하며, 예수님을 창조의 주체로 밝히고 성육신을 최초의 창조 행위 위에 세웁니다.
- **골로새서 1:16:** 바울은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선언하며, 창세기 1장에서 누가 일하셨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 줍니다.
-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 창조는 철학적 논증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시편 33:6, 9:**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 시편은 하나님 말씀의 창조적 능력을 찬양하며, 예배를 창세기 1장 위에 세웁니다.
- **요한계시록 4:11:**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 하늘의 예배는 모든 존재를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뜻으로 돌리며, 정경의 끝을 첫 구절의 울림으로 맺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 창세기 1:1은 무로부터의 창조(ex nihilo)를 가르치나요?

대부분의 유대교와 기독교 해석자들은 창세기 1:1을 하나님이 이미 있던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으로 읽어 왔으며, 이를 *creatio ex nihilo*(무로부터의 창조)라고 부르는 교리입니다. 히브리어 동사 *바라*(창조하다)가 오직 하나님을 주어로만 쓰인다는 점이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다만 본문 자체에 ‘무로부터’라는 표현이 쓰이지는 않으며, 그 신학적 정식은 후대의 성찰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핵심 주장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기원이십니다.

### 창세기 1:1은 과학과 진화론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창세기 1:1은 창조의 방식이나 시간표에 대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신학적 주장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현대 우주론 및 생물학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해 젊은 지구 창조론에서 오랜 지구 창조론, 진화적 창조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점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우주의 존재에 책임이 있으시다는 이 구절의 중심 선언을 과학이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창조 세계 안에서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루지, 왜 무가 아니라 무언가가 존재하는지를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 창세기는 왜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창조로 시작하나요?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기보다 전제합니다. 철학적 증명이 아니라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분이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조로 시작함으로써 우리는 곧바로 행동하시고, 말씀하시며, 질서와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선택일 뿐 아니라 목회적이고 서사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믿음에서 ‘태초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태초에’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신화가 아니라 역사와 실재에 닻 내리게 합니다. 우주에 시작이 있었고(현대 우주론도 확인한 주장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전에 계셨다는 말입니다. 신자에게 이는 우리의 믿음이 무관심한 우주 위에 덧씌운 희망 사항이 아니라 사물의 실제 본성에 대한 응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계셨고, 그 밖의 모든 것은 그분의 선물입니다.

## 관련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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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 2026-06-02
